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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이혼(離婚)

離婚 1. 순영이 결혼 생활을 한 지도 어느 사이에 오 년이었다. "엄마, 과자."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바느질하는 순영의 곁에서 보챈다. "응 과자 사주지, 이따가 사줄게 응." "싫어, 나 과자." "응 과자 주지, 지금은 돈이 없어 이 바느질을 해 가지고 가서 돈을 받아와야 과자를 사주지. 얼른 해 가지고 가서 돈을 받아 가지고 올게 가만히 있어, 응." 순영은 어린아이 머리를 쓸어 준다. "엄마, 나 때때." "암, 때때두 해주지, 인제 열한 밤만 자면 설이다. 설 때에 때때 해주지." "열한 밤?" "응, 열한 밤만 코 자면 설날이야. 때때 입고 세배하면 절 값 주지." "하나 둘 셋 열." 하고 손가락을 되는 대로 꼽았다 폈다 하면서 순영의 무릎 을 베고 드러눕는다. "너 참 성이 뭐야?" ..

정보 2023.02.22

한용운 - 철혈미인 (1937년, 미완)

戰爭 1. 서력(西曆) 一九三五년 二월 一三일 하오 三시에 천진남마 로(天津南馬路)에 있는 불교거사림(佛敎居士林)에서 중국 군 벌의 거두 손 전방(孫傳旁)의 암살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인 은 당년 三0세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약한 자여 너의 이 름은 여자니라」는 별명을 드드는 섬약한 여자 중의 한 사 람인 시 곡란(施谷蘭)이 듣기만 하여도 무시무시한 군벌의 거두요 백전 노장(百戰老將)인 손 전방을 암살한 원인을 자 세히 알려면 말로 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화민국 一四년이었다. 중국의 혁명은 완성되지 못하고 중벌들은 각각 자기의 세력을 붙들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할 뿐이요, 국가와 민생은 안중에도 두지 아니하므로 중 국 四억의 민중은 거의 어육이 되는 판이었다. 당시 절강군사 선후독판(浙江軍事..

정보 2023.02.22

한용운 - 색주가(色酒家)

色酒家 1. 옳다 그르다, 기쁘다 괴롭다 하는 속에서, 바람 불고 비 오 고, 차고 덥고 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인생으로서 면할 수 없는 일이라면 순영도 그러하였다. 순영이 사숙에 다니면서 가무를 배운 지도 어느덧 이태가 되었다. 그리하여 가무나 풍류를 옳게 다 배우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하여 성적이 우월하였고, 또는 나이 열여섯이 된지라 신 체도 상당히 발육되어서, 처녀로서 피어나는 때에 으레 있 는 아름다운 구석이 곳곳에 보였다. 측량하기 어려운 것은 세상일이라 하지마는, 아직도 천사 같은 순영이, 그 몸은 재 수사망을 빌기 위하여 고사지내는 아귀도(餓鬼道)의 제단(祭 壇)으로 이바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만한 무슨 전생의 업 원(業?)이 있었든지 없었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얘..

정보 2023.02.22

한용운 - 말로(末路)

末路 1. "아우님이 계신가, 원." 봉림(鳳琳)은 문간에서 부터 인기척을 내고 들어온다. "언니, 이게 웬 일이요?" 봄날의 따듯한 볕을 받고 앉아서 바느질을 하던 순영은 반 색을 하여 일어나 맞는다. "언제든지 바느질이야. 바느질 나자 아우님 났군." "그럼 어떻게 하우? 굶어죽을 수는 없구." 순영은 웃는 입으로 한숨을 짓는다. "늘 와서 놀다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있지마는 무얼 하는 지 나올 사이는 없구면, 먹구 사는 게 다 무엇인지. " "에구, 그렇지요. 나는 혼자 살림이라도 나갈 틈이 없는데 언니야 그렇고, 어서 앉으세요." 순영은 손으로 마룻바닥을 쓸더니, "방으로 들어갈까?" 하고 봉림을 쳐다본다. "방에는 무얼, 예가 따듯하고 좋지." 봉림은 치맛자락을 덕어치고 앉으려고 한다. "날이 ..

정보 2023.02.22

한용운 - 후해 (1936년, 미완)

1 어젯밤에 개인 적은 비는 다시금 가을빛을 새롭게 하였다. 나비의 꿈인 듯한 코스모스의 가볍고 깨끗한 모양이 아침 볕에 새로운 키스를 이기지 못하여, 온몸을 움직이고 있는 한편에 처음 핀 국화의 송이송이에 맺혀 있는 이슬 방울이, 바로 보면 은(銀)인 듯하다가 비껴 보면 금인 듯도 하였으 나, 맑은 바람이 지나간 뒤에 다시 보면 그것은 은도 아니 오 금도 아니오 이상한 수정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마음도 없이 가을 향기를 맡으면서 문지 도리를 의지하고 고요히 서 있는 스무 살이 될락말락한 예 쁜 여자는 잊었던 일을 깨우친 듯이 빠르면서도 한가하게 몸을 돌리면서, 갓 마친 단장을 거울에 비춰서 가볍게 두어 번 손질한 뒤에, 삼층장 위에 놓여 있는 바느질 그릇을 내 려놓고 다시 장문을 열고 무엇인지 꺼내려..

정보 2023.02.22

한용운 - 결혼(結婚)

結婚 1. 즐거움과 괴로움 속에 그날 그날을 보내는 순영도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되었다. 봄이 순영에게로 왔는지 순영에게서 봄이 생겼는지 모르나, 순영은 정수박이에서 발꿈치까지가 봄이었다. 육체도 봄이라면 정신도 봄이었다. 살에서 피어나 는 냄새가 봄의 향기라면, 감정에서 솟아나는 공상은 봄의 꿈이었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이성(異性)을 그려도 보고, 오지 않는 행복을 손가락에 찍어서 맛보려고도 하였다. 일기가 청명하면서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숙자의 집에서 는 술 파는 계집애들을 한 달에 두 번씩 대거리로 놀리는 정기일(定期日)이 있는데, 그날은 마침 순영이 놀게 되는 날 이었다. 순영은 그날을 이용하여 월미도의 조탕(潮湯)에 가 서 해수욕을 하기로 하였다. 순영은 일찍부터 서둘렀다. 손 님들에게서 얻..

정보 2023.02.22

윤동주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

정보 2023.02.22

한용운 - 조선 독립의 서

朝鮮獨立에 對한 感想槪要 此書는 獄中에 게신 我代表者가 日人 檢事總長의 要求에 應하야 著述한 者 中의 一인대 祕密裏에 獄外로 送出한 斷片을 集合한 者라 一. 槪論 自由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 人生의 幸福이니, 故로 自由가 無한 人은 死骸와 同하고 平和가 無한 者난 最苦痛의 者라 壓迫을 被하난 者의 周圍의 空氣난 墳墓로 化하고 爭奪을 事하는 者의 境涯는 地獄이 되나니 宇宙萬有의 理想的 最幸福의 實在는 곳 自由와 平和라. 故로 自由를 得하기 爲하야는 生命을 鴻毛視하고 平和를 保하기 爲하야 犧牲을 甘飴嘗하나니 此는 人生의 權利인 同時에 또한 義務일지로다. 그러나 自由의 公例는 人의 自由를 侵치 안이함으로 界限을 삼나니 侵掠的 自由난 沒平和의 野蠻 自由가 되며 平和의 精神은 平等에 在하니 平等은 自由의 相敵..

정보 2023.02.22

이광수 - 흥망

興亡 1 세 사자의 말을 다 듣더니 주몽은, 『오냐, 알았다. 내 도우리라고 너희 태수께 돌아가 아뢰어 라.』 하였다. 주몽의 이 말을 듣고 세 사자 중에 하나는 길을 인도할 차로 주몽의 진중에 남고, 둘은 다시 말을 달려서 모둔골로 돌아 갔다. 주몽은 즉시 군중에 명하여 오늘 밤 행군을 할 터이니 군 사와 말을 먹이고 또 내일도 쉬일 새 없이 싸울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 뒤에 여섯 사람(오이·마리·합보와 새 로 얻은 재사·무골·묵거)을 불러 군사 회의를 열었다. 여섯 사람이 모인 자리에 주몽은, 『모둔골 태수의 청을 들어야 하겠고 이 싸움은 꼭 싸워야 하겠소. 태수 을두지와 부인 조시누가 다 백성을 사랑하는 의인이라하니 이들은 도와야 하고, 고미는 역적이요, 낙랑 왕 최 낙은 남의 나라 여색과..

정보 2023.02.22